플라이 피싱이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것이 언제려나.....
책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잊고 있던 서류봉투를 발견하고 무엇이 들어있나 들여다보니 일본어로 적혀있는 수료증이 나왔다.
당시 서울릴낚시회에서 일본의 플라이낚시 강사를 초빙해 강습회를 개최했던 일이 떠오른다. 2년에 걸쳐서 두번 개최했는데 이 수료증이 언제 받은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낚시춘추사에 가서 1986년과 1987년 기사를 찾아봐야겠다.
강습회는 항상 이론 하루, 실기 하루였던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번은 한강계의 어딘가였던것 같다. 바람이 많이불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한번은 분명 금강이었다. 당시 이론강습은 대학로의 예총회관에서 있었는데, 서울릴의 박현제 선생님이 꼭 참석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또 통역을 맡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외국어대 통역대학원생이 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간 볼륨이 있는 그런 스타일이었다는 별개 다 생각난다.
수료증의 내용은 특별한 것은 아니고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하루 이틀 연습하고 수료증을 받는 사실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아무튼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플라이낚시의 도입 시도였다는 기록이다.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은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한사람은 기억에 남아있다. 현재 모 플라이낚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때 이미 독학으로 장비를 갖추고 있었고 플라이캐스팅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상태였다고 기억한다. 솔직히 기억에 남게된 일이 있었지만.
수료증 내용은,
귀하는 대한민국 서울시에서 개최된 플라이캐스팅 연수회에 오셔서 플라이캐스팅의 정신과 기술을 잘 이해하고 그 실기를 습득한 일은 증명합니다.
서기 1987년 4월 5일
일본국
후지 플라이캐스팅 에리어
대표취제역 사장 나카노 코오죠
후지 플라이캐스팅 에리어가 아직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검색이 되지 않으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사용하던 장비도 고스라니 남아있는데,
일본 NFT의 스플릿케인 밤부낚싯대, 이것은 박현재 선생님이 갖고 계신던 것을 다이와의 클로즈드페이스릴과 맞교환한 것이다.
어쩌다 구입한 은성사의 보세품 플라이대(#6), 정체불명의 플라이릴과 라인으로 처음 캐스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 현재의 명동 전철역 입구 인근에 있던 작은 낚시점에 소문 듣고 찾아가 구입한 ABU의 #8 플라이릴.
이후, 서울 올림픽 개최 직전인 1988년 여름, 해외 여행 자율화가 실시되기 이전이지만 어떻게 일본 토쿄 패션학교(ESMOD JAPON)에 연수를 가게된 기회로 신주쿠의 산스이를 찾아가 큰맘먹고 구입한 Adams 플라이대.
구입당시 점원이 권하던 것은 프레젠테이션이 더 좋은 #3번대, 하지만 난 #4를 사고 말았다. #3번을 살껄...#4는 뻣뻣했다.
당시는 플라이로 낚을 대상어가 그렇게 흔치 않았던 이유도 있고, 플라이훅 타이잉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 장비, 특히 라인이나 리더의 구입이 쉽지 않았다. 리더의 경우는 고전적인 형태로 직접 연결해 테이퍼라인을 만들기도 했지만...
하지만 해외여행 자율화 이후 급속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화로스포츠가 각종 소품을 수입해 시장에 풀면서 플라이낚시는 활성화되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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