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춘추에 7월호에 실렸던 조행기가 편집이 너무 심했던 관계로 여기에 조행기 원문을 나누어 실으려 한다.
오키나와(沖縄) 조행기
조홍식(이박, 루어낚시100문1000답 저자)
여느 때와는 달리 텅 빈 여객기의 좌석은 기내에 정적이 돌 정도여서 행선지가 다른 비행기를 탄 것 같은 위화감이 흐르고 있었다. 역시, 후쿠시마(福島)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는 일본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국제적 관광지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도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 그 원자력 발전소와의 거리가 서울보다도 더 먼 오키나와이건만 타고 있는 승객이라곤 누가 봐도 오키나와 주둔 미군관계자로 보이는 몇몇이 기억에 남을 뿐. 관광객은 어쩌면 나 혼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좁은 입국심사대를 그 어느 때보다도 순식간에 지나, 바로 옆 국내선 건물에 비해 초라하게도 보이는 국제선 건물을 빠져 나왔다. ‘너무 빨리 나왔나?’ 마중 나와 주기로 한 ‘미노루’씨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전화를 걸어보니 벌써 나왔냐며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비가 꽤 뿌린 것 같았다. 도시가 푹 젖어 있고 먹구름이 하늘을 다 가리고 있었다. 매년 보는 거리,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스카이라인은 상당히 바뀌어 예전과 같이 시골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게 탈바꿈되어 버린 곳이 바로 오키나와의 최대도시인 나하(那覇)의 풍경이다. 나하 시내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 본섬 전체가 도로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해안선을 따라 직선화되는 도로와 다리들로 과거 열대어의 보고이던 인리프(In Reef)의 포인트들은 하나둘 없어져 버렸다. 바람은 꽤나 강하지만 완전한 동풍, 남북으로 비스듬하게 걸쳐있는 오키나와의 지형 상, 동풍은 주요 낚시 포인트가 되는 오키나와 본도의 서쪽바다를 잠잠하게 만들어 줄 것은 분명했다.
이번 오키나와의 방문 목적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GT’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자이언트 트레발리, 오키나와에서는 ‘가~라’라는 사투리로 불리는, 내게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물고기를 낚고자 함이다. 유독 이 물고기를 추구하는 내게 오키나와라는 필드는 낚시가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하고 주민들의 정서도 일본 본토와는 달리 오히려 우리네와 비슷한, 꽝을 치더라도 즐거운 장소이다. 이번에는 배낚시만이 아니라 쇼어캐스팅도 염두에 두었다. 항상 꿈을 꾸어오던 육지에서 GT를 낚고 싶다는 생각을 이루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낚시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 않은가. 6월에 가면 수온이 너무 높아 별로, 이를 참고해 5월에 가면 수온이 너무 낮아 별로…라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것이다. 특히 금년은 라니냐에 의한 저수온 현상이 오키나와의 바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키나와의 5월 중순이라면 ‘우리즌’이라 부르는, 뜨거운 남풍이 불기 직전의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는 기간이다. 특히 대물이 잘 낚이는 최고의 시즌이건만 어째 서울보다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에 수온이 4월의 수온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쯤에도 저수온이 문제가 되었지만 회복되리라 낙관하던 것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쇼어캐스팅은 이미 반쯤 물 건너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한 가지 변수가 더 있었다. 3일전이 보름사리, 거기에 저기압. GT는 만월, 저기압이 다가왔을 때 산란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혹시 산란이 있었다면 산란 이후 회복 중의 GT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낚시가 어려워 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낚시 계획은 이랬다. 우선 이틀 배낚시, 지갑 사정이 좋지 않으므로 대절은 불가하고 합승을 선택했다. 물론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지인을 총동원,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 배를 탈 수 있느냐 아니냐를 가른다. 특히 매년 신세를 지고 있는 요세미야 피싱센터의 선박들은 대형선이라서 최소 5명은 모아야 한다. 다행히도 작년 새로 출범한 ‘블루드래곤’은 크기가 작아 2명이서도 합승 가능, 물론 그날 대절 손님이 들어오면 계획이 무산되고 마는 위험성은 남아있다. 블루드래곤은 ‘요세미야 3호’ 선장을 하던 ‘마에다’씨가 요세미야 피싱센터로부터 독립해 운영하는 배로 원정 손님이 줄어든 요즘에 꽤 실리적인 크기의 배지만 파도가 높은 날은 포인트가 한정될 수밖에는 없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하루는 이 블루드래곤을, 또 하루는 요세미야 3호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요세미야 피싱센타에서 독립한 마에다 선장과 오랜만에 투샷, 블루드래곤
블루드래곤이 계류되어 있는 곳은 나하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이토만(糸満)시’에 위치하고 있는 최신 정박시설이었다. 동행은 ‘타카키’씨. GT가 좋아 5년 전 본토의 삶을 버리고 오키나와에서 뼈를 묻기로 작정한 낚시마니아이다.
줄줄 내리는 빗속, 어둑한 새벽에 기분 나쁠 정도로 평평하고 고요한 바다 위를 달려 다다른 첫 번째 포인트에서 캐스팅을 시작했다. 3~4년 전부터 GT낚시에 이상하리만치 유행하는 물고기형 펜슬베이트를 과감하게 버리고 과거 오키나와에서 기본이라고 여기던 펜슬폽퍼를 단 것이 적중했나보다. 블루드래곤이 같은 포인트를 두 번째 흘러 내려가던 때에 루어를 덮치는 물고기의 강렬한 물보라가 수면에 일었다. 언뜻 보이는 물고기의 등이 비 내리는 검은 수면에서 푸르스름하게 비쳐 보이는 것으로 낚고 싶던 ‘가~라’, 그러니까 GT가 아닌 것은 알았다. GT라면 회색이나 은색으로 보인다. 사용하고 있는 낚싯대는 작년에 새로 만든 것으로 파워는 그대로 남기되 가볍고 가느다란 새로운 컨셉의 GT낚싯대인데, 아직 그 정확한 능력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드랙을 한껏 조이고 물고기의 힘을 그대로 맞받아 보았다. 블랭크의 벤딩 커브를 보고 싶었기에 일단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물속으로 파고드는 물고기의 힘이 마치 GT와 같아서 한 손으로 힘이 들기 시작한 시점에서 살짝 드랙을 풀었다. 지직, 지직 조금씩 풀려나가는 드랙, 너무 앞으로 밀려난 배를 후진해 정위치 시키고서 단숨에 끌어올렸다.
폭우 속에서 펜슬베이트용 신형 낚싯대의 커브를 확인해 보왔다.
수면에 떠 오른 물고기의 정체를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본 명칭으로 ‘호시 카이와리’라고 부르는 이 물고기는 트레발리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그리 크게 성장하지는 않는 GT의 먼 친척이라고 할까? 학명은 Carangoides fulvoguttatus, 영어명칭은 골드스포트 트레발리(Gold Spotted Trevally)라고 불리는 라이트지깅에 가끔 걸려나오는, 그저 손바닥만 한 트레발리라고 여기던 물고기였다. 무게는 13kg 정도였는데 아마도 최대 성장개체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첫 출발이 좋다고 생각되었지만, 전날의 우려가 그대로 맞아떨어졌는지 전혀 입질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쏟아지다 말다를 반복하는 빗속에서 너무나도 조용한 케라마(慶良間)제도의 섬들을 누비다가 오랜만에 만난 수면에서 춤추는 거대한 만타가오리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고 하루해가 저물기 직전, 타카키씨가 작으나마 GT를 한 마리 올릴 수 있었다.
비내리는 케라마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철수 직전 이토만시 앞 리프의 안쪽에서 다카키씨가 소형 GT를 한 마리 낚고 체면치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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